박민영 (문화평론가)


  내밀한 친밀함을 위해  

휴대폰은 말 그대로 가지고 다니는 전화이다. 그것은 개별 사용자에게 매체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요즈음 청소년들의 프라이버시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확장된 것도 이 같은 휴대폰의 특성에 기인한다. 휴대폰이 보편화되기 전, 청소년들이 친구와 접촉하려면 집전화로 연락해야 했다. 아무래도 부모에게 통화상대와 통화내용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부모는 유선전화를 통제함으로써 자녀들과 그 친구들의 관계를 감시하고 규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휴대폰을 사용하면서 그런 일은 어렵게 되었다. 더구나 청소년들이 문자로 접촉하면? 간섭은 더욱 어려워진다.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주고받는 말이 귀로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신문에 발표된 바에 따르면, 청소년 10명 중 8명은 통화보다 문자를 선호한다. 청소년에게 휴대폰은 한마디로 전화 통화보다는 문자를 주고받는 수단인 것이다. 청소년들이 문자를 선호하는 것은 통화보다 비용이 싸다는 점과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 특유의 내밀한 인간관계에 대한 욕구 때문이다. 문자가 보장하는 프라이버시는 자신들만의 친밀한 공간을 만들어준다. 또한 문자 메시지는 직접적인 대화나 전화 통화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줌으로써 소심하거나 수줍음을 잘 타는 학생이 친구를 만드는 데도 적절한 통로 역할을 한다. 사실 교환되는 문자 내용은 별 것 아니다. 주로 ‘뭐해?’ ‘어디야?’ ‘집에 잘 갔어?’ 같은 가벼운 수다, 안부 묻기, 잡담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보이지 않는 효용이 있다. 청소년들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문자 메시지를 교환함으로써 같은 장소에 ‘현존한다’고 느낀다. 서로 떨어져 있지만, 친한 친구와 같은 리듬, 같은 결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를 주고받는 행위 그 자체이다. 노르웨이의 인류학자 트룰스 에릭 욘센은 이렇게 말했다.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메시지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수신자에게 당신이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청소년, 언어 창조자로 거듭나다  

문자 메시지의 주사용자인 청소년은 휴대폰 문자 문화의 리더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휴대폰 문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줄임말, 이모티콘, 개성적 어투 등은 수많은 무명의 청소년 이용자들의 언어 감각에 의해 창조되고 유포된 것이다. 이에 대해 기존의 언어질서를 교란시킨다는 염려도 없진 않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등장은 늘 언어의 변화를 수반해왔고, 그런 변화는 사회적 행동 패턴과 경험의 한 부분으로 통합되어왔다.


엄밀히 말하면 ‘문자’는 ‘글’이다. 그러나 휴대폰 문자 교환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로 말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문자성과 구술성이 교묘한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왜냐하면 문자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그림문자인 이모티콘이 추가된다. 이러한 문자 메시지의 특성이 목적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것은 정서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욕구 충족인 것이다.

휴대폰 문자는 본질적인 제약이 있다. 컴퓨터 키보드보다 훨씬 작은 휴대폰 키패드를 눌러 생성해야 하고, 글자 수도 한정되어 있다. 이 때문에 문자메시지는 개발될 당시만 해도 개발자들 사이에서 큰 기대를 모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역설적으로 장점이 되었다. 문자 사용자들, 특히 청소년들은 매우 짧고 간결한 언어들을 창의적으로 고안해냄으로써 한계들을 극복해나갔다. 직관적인 연상능력에 의존한 그림문자 개발함으로써 언어 게임처럼 그것을 해독하는 즐거움을 만들어내고, 다양한 어투 표현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냈다. 청소년들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제약된 외부 조건에 언어적 행동양식을 창조적으로 적응시켜나가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청소년이 문자 중독에 걸리기 쉬운 이유  

청소년들의 문자 실력은 어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눈으로 보지 않고 손의 감각만으로도 문자 전송을 할 수 있는 청소년은 흔하고, 엄지손가락 두 개 만으로 분당 100타 이상의 빠른 속도로 문자를 주고받거나, 심지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문자를 보낼 수 있는 학생도 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15∼19세 청소년이 하루 평균 보내는 문자 메시지는 60.1건이며, 수업시간 마다 5건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눈으로는 선생을 응시하면서 책상 아래 손으로는 문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문자를 교환하는 학생은 메시지를 보내지 않을 때에도 친구들에게 언제 어떤 내용으로 다시 문자를 보낼 것인지 생각하게 되고, 그로 인해 수업의 집중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문자 교환은 다른 학생들의 주의를 끌게 되어 수업분위기를 해친다.
 

청소년은 인간관계, 특히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단계에 있다. 그런 까닭에 성인보다 훨씬 문자에 즉각 응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기 쉽고, 친구가 문자에 중독되면 자신도 문자에 중독되기 쉽다. 심리적으로도 과도기에 있는 까닭에 다량의 문자 교환이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지위를 높여주는 것으로 여기는 과시지향성이 나타난다. 반면 하루에 받은 메시지가 몇 개 안 되면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거나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여긴다. 휴대폰 문자는 이처럼 청소년들의 정체성 감각, 친밀감, 안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화평론가 박민영 님은...
저서로  [공자 속의 붓다, 붓다 속의 공자](2006년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  [즐거움의 가치사전](2007년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 KBS ‘TV 책을 말하다’ 선정 도서),  [이즘](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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