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말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한 귀퉁이에선
백혈병 어린이를 위한 자선 공연이 있었습니다.
요즘 한창 인기가 있는 댄스 음악에서 '비틀스'까지
다양한 장르의 곡을 연주하는 때문인지,
남녀노소가 고루 몰려들었습니다.
곡이 끝날 때마다 참하게 생긴 여학생 하나가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며,
콘서트의 목적을 설명했습니다.
그 순수한 의도에 공감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금함 앞으로 줄을 섰습니다.
금세 적지 않은 성금이 쌓이고,
여학생이 내미는 커다란 종이 위엔
위로와 격려의 말들이 빼곡히 들어찼습니다.
그 가운데엔
행색이 아주 초라해서 금세 눈에 띄는
중년 남자 한 사람도 끼여 있었습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그는 점퍼 주머니에서
구깃구깃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놓았습니다.
그 역시 여학생의 부탁에 못 이겨 펜을 들었습니다.
몹쓸 병에 걸린 아이들을 위한 한마디와
주소와 이름을 적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쭈뼛거리다가
아주 보잘것없는 글씨로 몇 글자를 적고
도망치듯이 사라졌습니다.
꼭 다섯 글자였습니다.
'길음동 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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