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번 주말엔 특별한 계획 있으신지요?” 

중학교 1학년 딸 아이가 이렇게 정중한 말투로 전화를 걸 땐,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응? 주말에 아빠가 무슨 계획이 있어, 우리 딸하고 놀아야지” 
“ㅋㅋ, 알았으. 그럼 나 정보 보고서 쓰는 거 도와주셔야 해”
“정보 보고서? 그게 뭐야?”

정보 수업 시간에 IT 기술 발전 보고서를 써오랬답니다. 글 써서 먹고 사는 아빠를 닮아서 글 쓰는 건 겁내지 않는 아이입니다만 최신 IT 관련 보고서를 써오랬더니 좀 막막한가 봅니다. 속으로 픽 웃었습니다. ‘그런 건 아빠가 전문이지~’

드디어 주말 저녁. 모처럼 놀러오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고 어른들이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눌 때 딸 아이는 보고서를 쓰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아빠, 난 휴대폰으로 달라지는 세상에 대해서 쓸 거에요.” 기특하게 소재도 다 정해놨습니다. 

“그런데 휴대폰 검색했더니, 죄다 휴대폰 파는 데만 나와요”, “그래, 그래. 검색은 그만 두고 아빠 얘기를 좀 들어보지 않겠니? 처음 휴대폰이 나왔을 땐 어디서든 사람들과 통화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인기를 끌었단다. 그런데 기술이 발달하면서 통화는 물론 문자나 그림도 보내고 인터넷에 접속해 다양한 정보를 찾을 수 있지. 네가 휴대폰으로 하는 일을 생각해 보렴. 통화는 거의 안 하고 주로 문자 보내고, 인터넷 검색하고, 노래 듣고 사전으로 쓰고... 마치 소형 컴퓨터처럼 쓰지?


아빠가 쓰는 스마트폰이 앞으론 더 많이 쓰일 건데, 그럼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아진단다. 쉴새없이 이메일을 주고 받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페이스북 같은 걸로 외국에 있는 친구와도 수다를 떨지. 원한다면 영상통화도 할 수 있단다. 컴퓨터로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이제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거지.”


그러면서 페이스북 페이지를 하나 열어 보여줬습니다. “미국에 사는 아빠 친군데, 여기서 이렇게 만날 수 있단다. 사진도 보고.”

“와, 그럼 앞으론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하고도 자유롭게 연락하는 시대가 되겠네요. 누가 어디 있든지, 요 스마트폰 하나면 다 되는 거잖아요? 나도 페이스북 만들고 싶어요.”
 
“그거 참 신기하구나. 휴대폰으로 상대방 사진같은 거도 다 볼 수 있다고?”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휴대폰이 더 좋아져서 나중엔 여기 없는 사람하고도 통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처음엔 해외에 있는 누군가를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만, 아, 곧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6월. 그리고 여기에 없는 사람이 해외에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는 걸. 


1939년생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열두살. 육남매의 막내였습니다. 전쟁의 피해가 그나마 좀 덜했던 전라도에 살았지만, 막내를 너무나도 이뻐하던 맨 위 큰아버지는 어느 날 나라를 지켜야 한다며 떠나셨고 그 뒤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셨습니다. 실향민도 아닌 아버지는 그 뒤로 6월엔 항상 그렇게 마음을 앓아오셨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벌써 60년. 열두 살 까까머리 아이는 머리가 온통 센 칠순을 넘긴 할아버지가 됐고, 그 때 자기 보다 더 큰 손녀가 생겼지만 여전히 열두살 막내와 놀아주던 큰 형님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신가 봅니다.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시는 할아버지가 유쾌한 말투로 농담을 건넵니다.


“우리 강아지가 얼른 커서 휴대폰 더 좋게 만들어
할아버지가 큰 할아버지하고 통화할 수 있게 해줘야지?” 


농담인 듯 해도 떨리는 말끝에 가족들 모두 잠깐 숨을 죽였지만, 이럴 땐 명랑한 딸 아이가 역시 도움이 됩니다. 


“걱정 마세요. 할아버지. 휴대폰이 점점 더 좋아지니까, 우주 어딘가에 있는 천국에 계신 큰 할아버지와도 통화하게 될 거에요. 이거 보고서에 써야 되겠다. 우주에 있는 사람들과 통화하게 될 거라고.”
“야, 그게 보고서야, 공상과학이지?”
“흥, 선생님이 독창적인 거 써오라고 하셨단 말이에요.”


물론, 우리는 압니다. 돌아가신 분들과 통화할 수는 없다는 걸. 하지만 ICT 기술이 더욱 발달하면서 우리 삶을 더 편하게 만들고 그만큼 사람들이 더 가까와질거라는 건 압니다. 과거의 희생과 아픔을 위로할 순 없지만, 미래의 슬픔과 아픔은 충분히 위로할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한국전쟁 60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하신 수많은 순국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큰아버지, 저도 몹시 뵙고 싶습니다. / SKT  
SKTstory.com 오픈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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