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큰진지남 (SK텔레콤 블로그 에디터)

대한민국에서 이동통신이 일반인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요? 80년대에도 카폰과 망치(?)같은 휴대전화가 있었지만 당시에 이런 무선통신 기기들은 일반인들이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의 가격을 자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선통신의 보급기'라고 볼 수 있는 시기는 90년대 초중반에 삐삐가 보편화 됐을 때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현대사회에서는 휴대전화가 없이는 주위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삐삐'


전자파, 모르스 신호 그리고 무선통신조약까지
그런데 이러한 사회가 되기까지 이동통신 기술은 무려 100여년을 돌아왔다는 사실, 아시나요? 무선, 그리고 이동통신을 가능하게 한 전자파는 무려 100여년 전인 1864년 영국에서 맥스웰이라는 수학자에 의해서 발견되었고 1888년에 독일의 물리학자 헤르츠에 의해서 이론이 증명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895년에 마르코니라는 이탈리아 과학자가 2.8km가 떨어진 거리에 모르스 신호를 보내고 1900년 12월에는 영국과 캐나다간 대서양 횡단 무선통신에 성공하면서 무선통신이 실생활에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1906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최초의 육성 무선통신을 이뤄내고 국가간 국제무선전신조약이 체결되면서 본격적인 무선통신 시대가 개막되었답니다. 이렇듯 지금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휴대폰과 같은 이동통신 장비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지만 지금의 이동통신 기술의 발전이 있기까지는 100년이 넘는 기간이 소요된 것이지요.

집 밖에서 전화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던 시절


국제무선통신조약이 체결된 이후 무선통신의 기술은 도화선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부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모르스 부호와 같은 형태의 통신에서 1940년대에 카폰, 1960년대에는 교환원 없이 상대방에 직접 전화를 걸 수 있는 형태의 자동식 무선이동전화까지. 한국에서는 1990년대에 보편화된 삐삐는 무려 40여년전인 1951년에 미국 뉴욕에서 최초로 제공되었고 1970년대에는 이동통신 기술이 한 단계 더 발전하면서 특정한 주파수 대역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의 기술이 개발되면서 드디어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휴대폰’형태의 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동통신 서비스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지국


친절한 맥스웰씨를 기억해 보아요^^
휴대폰이 거의 생필품이 되어버린 21세기. 우리가 이동통신 서비스를 편리하게 사용하기 까지는 100여년간의 무선통신 기술의 진화가 있었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친구와 통화를 할 때 최초로 전자파를 발견한 맥스웰 아저씨에게 감사하는 마음만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SKT

※ 한국에 무선 통신 기술이 들어온지도 100년이 넘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동통신 History’ 다음 편에서는 한국의 무선 통신 기술의 발전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국제무선전신조약 (International Radiotelegraph Convention)
1906년에 베를린에서 처음 체결된 후 1912년 런던, 1929년 워싱턴에서 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1932년 마드리드에서 ‘국제전기통신조약’이 체결되면서 국제무선전신조약은 이 안에 포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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