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큰진지남(SK텔레콤 블로그 에디터)

이렇듯 엄청난 추진력과 자기희생, 그리고 사명감을 가지고 진행된 CDMA 기술 개발. (CDMA기술 개발 과정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를 눌러주세요^^) 그런데 당시에 SK텔레콤(당시 한국이동통신) 구성원들만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린 것은 아니랍니다. 서정욱 단장은 협력업체들과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휘했다고 합니다.
 
  먼저 개발하는 업체에게 우선권을 준다

한국이동통신 부설 이동통신 기술 개발 사업 관리단(CDMA방식 및 PCS의 기술 개발을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회사 부설기관으로 만들어진 기관)이 시행한 첫 업무는 ‘사용자 요구사항’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관리단의 ‘사용자 요구사항’이 독특했던 것은 최소한의 성능만 제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업체들은 규격에서 자유로웠고 자율성이 보장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이었지요. 그리고 더 독특했던 것은 ‘가장 먼저 개발하는 업체에게 한국이동통신의 장비 공급 계약을 맡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용자 요구사항이 발표된 후 업체들이 시스템 개발에 승부수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한 방향이 제시되고 각 사의 자율성을 높이 사는 분위기가 되니 서로 신뢰하고 독려하는 가운데 생산적인 관계가 형성된 것이지요. 더군다나 ‘개발 속도’에 따라 장비공급 계약을 맡긴다’는 발표는 협력업체들이 분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공동개발의 틀을 가장 먼저 뛰어 나온 L사가 95년 5월 1천여 항목의 상용시험에 먼저 통과하면서 한국이동통신의 장비공급 업체로 선정되었습니다.


  S사의 확약서 사건  

이렇듯 장비개발과 관련한 프로세스는 진행되었지만 문제는 여전히 있었습니다. 이는 다름아닌 단말기 제조.

사실 그때까지 단말기에 대해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솔직히 속으로는 정 급하면 외국 제품을 사다 쓰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관리단이 보유한 단말기는 CDMA 음질을 시험하기 위해 퀄컴에서 구입한 1세대 단말기 뿐이었을 정도였죠. 이러한 상황에서 단말기 개발을 생각하는 기업은 거의 전무했습니다. 게다가 시스템 제조만도 시간이 없어 절절매던 상황. 이런 시기에 관리단은 업체들에 단말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이 워낙 극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었던지라 업체들은 시간이 되면 업체들이 알아서 할테니 내버려 달라는 주장을 했지요.

그러던 중 서정욱 단장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것이 S사. 당시 S사가 만든 단말기는 모토로라의 명성을 뒤엎을 정도로 빠르게 휴대폰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는 중이었습니다. 이를 알고 있었던 서정욱 단장은 친히 S사를 방문합니다. 이 때 터진 것이 바로 ‘S사 확약서 사건’.

사실 S사는 당시 단말기를 제조할 여력도 부족했지만 워낙 버전이 잘 바뀌는 단말기 시장에서 제일 먼저 총대 매는걸 꺼려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서 단장은 S사의 한 연구원으로부터 S사 단말기의 명성에 맞게끔 CDMA 이동전화도 잘 만들 것을 다짐하는 확약서를 쓰게 한 것이지요. 이 사건이 있은 후 2개월 뒤 S사는 1차 버전단말기를 관리단에게 갖다 줬다고 합니다. S사의 CDMA 단말기 신화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서정욱 단장 회고담
“무조건 만들라고 했습니다. 우리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외국에 의존하겠어요. 일단 실무자부터 설득해야 일이 쉽게 풀리니까 .. S사 연구원한테 잘 만들겠다는 확답을 받아냈습니다. 참석자 모두의 다짐을 적었죠. 나도 거기에 ‘잘 만들것을 믿습니다 ’라고 썼지요. 그 다음에 나는 윗사람을 만나 강하게 밀고 나갔지요"


  'IT강국 코리아'를 향한 큰 걸음 

CDMA 개발과정에서는 S사의 확약서 사건과 외에도 한국이동통신과 협력업체간에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답니다. (아래 박스를 참조해 주세요^^) 이렇듯 ‘기술 확보’를 위하여 국산 단말기 개발까지 독려했던 서정욱 단장. 어쩌면 그의 불호령이 세계 2,3위의 단말기 업체들의 토대를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만일 당시 서 단장의 용단이 없었다면 지금쯤 단말기 수급상황은 어땠을까요? 또 나날이 늘어가는 가입자에게 온전히 서비스를 할 수 있었을까요?

H사 연구원
“95년 10월 이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H사 단말기 파트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불벼락이 떨어진 것이에요. H사만 단말기를 안 만들어 왔다고 빨리 만들어 오라는 것이었어요. 갑자기 만들 재주도 없고 그래서 급한대로 일본 부품들로 조립해서 가져갔습니다. 한마디로 껍데기만 국산인 셈이죠. 그런데 서단장님이 한참을 보시더니 다짜고짜 ‘뜯어’ 하시는 거예요. 우린 바짝 긴장했습니다. 사실 서 단장님만 아니어도 누가 그런 자리에서 단말기를 뜯겠습니까? 자기네 속을 다 내보이는 건데 누가 하겠어요. 그 속을 보시더니 노발대발 하셨어요. 우린 결국 반성문까지 쓰고서야 그 자리에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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