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영 (문화평론가)
나에게는 무뚝뚝한 고향 친구가 하나 있다. 성격이 그렇다보니 누구에게 살갑게 안부 전화하는 법도 없고, 문자를 할 일이 있어도 그야말로 ‘용건만 간단히’ 보낸다. 나이가 꽤 찼는데도 결혼도 안하고 애인도 없는 친구였다. 그런 그에게 하루는 내가 문자를 보냈다. “우리 본 지도 오래됐는데, 저녁에 한잔 어때?” 답문이 왔다. “좋지~. 일 끝날 때쯤 연락할 테니 광화문 쪽으로 와라~^^” 거기에는 놀랍게도 이모티콘이 찍혀 있었다. 여태껏 없던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신변의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직감이 맞았다. 그는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10살 연하의 여자와. 그는 상대에게 푹 빠져있는 눈치였다. 내가 말했다. “이모티콘 보고 내 뭔가 있다 생각했다.” 그는 연애하면서 이모티콘 잔뜩 넣어서 문자 보내는 버릇이 생겨서 다른 사람한테도 그렇게 된다고 말했다. 덕분에 주변에서 사람이 살가워졌다는 말을 듣는다며 웃는다. 하긴 이모티콘 없이 애인에게 문자를 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물결(~)과 웃음(^^)은 기본이요, 하트(♡)도 시시때때로 넣어줘야 감정 표현이 된다. 연인과의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메시지보다 감정이고 함께 있다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연애하는 사람들만큼 휴대폰이 중요한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 같다. 제아무리 휴대폰을 싫어하던 사람이라도 일단 연애가 시작되면 휴대폰을 애용하지 않을 수 없다. 연인들의 하루는 “잘 잤어?”하는 문자로 시작해 “잘 자, 내 사랑”하는 문자로 끝난다. 무엇보다 연애가 시작되면 문자에 정성을 들이게 된다. 한자 한자 정성을 들여 쓰고, 자신의 마음이 잘 담겨졌는지, 오해할만한 대목은 없는지 살펴보고, 퇴고까지 한 후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답문을 받을 때까지의 기다림. 그 시간은 설레임, 간절함, 초조함으로 가득 찬다. 그러다 ‘딩동’하고 메시지 수신음이 들리는 순간 가슴에도 반짝 불이 켜진다.


반면 연애 초기에 문자를 보낸 지 반나절이 넘도록 답문을 받지 못한다면? 간절함과 설레임은 금세 불안감과 절망감으로 바뀔 것이다. 나아가 상대방이 어떤 이유로든 며칠 동안 연락이 두절된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온 신경이 휴대폰으로 쏠리다가, 종국에는 그것을 결별 통고로 받아들일 것이다.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 한 나절이나 심지어 며칠 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 것도 용인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연결되어야 하는 휴대폰 대중화 시대에 연락불통이나 연락지연은 무관심, 무정함, 혹은 변심으로 읽혀진다.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 고정희 시인은 이런 시를 썼다. “너에게로 가는/ 그리움의 전깃줄에/ 나는/ 감/ 전/ 되/ 었/ 다.”고백」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이것을 요즘에 맞게 바꾸면 “휴대폰에 감전되었다”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연애하는 사람은 연락이 오면 오는 대로 휴대폰 수신음에 격렬하게 반응하고, 연락이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초조해한다. 서로 연락하지 않는 시간에도 연인들은 휴대폰을 놓지 못한다. 틈틈이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상대방의 사진을 보거나 주고받은 메시지들을 꺼내 다시 읽으며 애틋한 감상에 빠진다.

연인과 싸웠다가 화해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나, 이별 후 그리움에 휩싸인 사람은 휴대폰 사용이 더욱 극단적인 양상을 띤다. 휴대폰을 켜놓자니 자신이 구차하게 연락해 상대방에게 매달릴까봐, 혹은 다시 연락이 올 것 같은데 오지 않는 탓에 긴장감에 고통스럽고, 꺼놓자니 상대방에게서 오는 연락을 못 받을 것만 같다. 그래서 휴대폰을 ‘껐다 켜기’를 반복한다.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은 휴대폰에 꽁꽁 묶인 듯 꼼짝할 수 없는 신세가 된다.

오늘날 연애는 휴대폰으로 시작해서 휴대폰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소개팅 때 휴대폰으로 사진을 교환한 후 만나볼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사랑의 밀어 역시 대부분 휴대폰을 통해 전해진다. 그러다 결별하면? 최종적으로 휴대폰이 그 결별을 실감케 해준다. 바로 이런 문자 메시지를 받을 때이다. “고객님 상대번호가 커플 해제되었습니다. 요금제를 바꿔주세요. 행복한 하루되세요.” 결별한 것도 슬퍼 죽겠는데, ‘행복하라’는 마지막 한 마디가 속을 뒤집어 놓는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연애를 시작한 후, 상대방과 주고받는 문자 메시지들을 모두 컴퓨터에 정리두었다. 그리고는 둘 사이에 트러블이 발생하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그 문자들을 읽곤 한다. 그러면 연애 초기의 설레임이 마음 속에서 재생되면서, 상대방에 대한 서운함이나 원망이 눈 녹듯 사라진다고 한다. 오늘날의 연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휴대폰을 통해 사랑을 나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휴대폰과 사랑을 나눈다는 말이기도 하다. 연애하는 사람은 너나할 것 없이 휴대폰의 포로가 되고, 휴대폰을 애지중지하게 되니까.

문화평론가 박민영 님은...
저서로  [공자 속의 붓다, 붓다 속의 공자](2006년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  [즐거움의 가치사전](2007년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 KBS ‘TV 책을 말하다’ 선정 도서),  [이즘](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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